VC 되기는 쉬워도 좋은 VC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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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

VC 활황기 (2010-2021)

우리나라에 벤처캐피탈(VC)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활황을 맞은 역사가 10년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닷컴버블 시절에도 창투사가 있긴 했지만, VC라는 이름이 지금처럼 유명해지고 또 많아진 시점은 2010년 이후입니다.

그 배경에는 2008년 아이폰 출시와 맞물려 모바일 앱이 우후죽순 등장했고 페이스북, 링크드인, 달러쉐이브클럽 같은 미국의 스타트업들을 벤치마킹하여 국내에도 스타트업 창업이 급격히 늘었던 시기의 시작이 바로 2010년 경입니다.

제가 취준을 하던 2012-2013년에야 벤처캐피탈이 조금씩 알려지긴 했으나 그 때만 해도 증권사, 주식 펀드매니저 등에 비해 생소한 개념이었죠.

VC

어쨋든 그 201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존재감을 알려가던 벤처캐피탈은 박근혜 정부 들어 창조경제를 기치로 스타트업, 벤처캐피탈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으로 민간 벤처캐피탈의 출자자(LP)가 되었고,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하자는 목적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개인엔젤투자자에게는 세액공제 혜택도 듬뿍 안겨주며 시장을 지원했습니다.

거기에 2018-2021년까지 재정 확장 정책을 통해 유동성이 시장에 공급되면서 호황을 넘어 버블로 이어졌죠.

출처: 중기부

2011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벤처투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벤처캐피탈 수도 증가하였으며 벤처투자 집행금액도 커졌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스타트업 & 벤처투자 문화가 미국 등 선진시장에 비해 늦게 꽃피웠다 보니 경험이 부족하고 업에 대한 이해를 잘못하고 있는 VC들도 시장에 많이 신규로 진입하게 됩니다.

스타트업이 VC에 아쉬운 점

그러다보니 스타트업 입장에서 불편하고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행태도 많이 일어났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이 이런 것입니다.

  1. IR 미팅에 회사에 대한 사전 스터디나 지식이 전혀 없이 들어와 업에 대한 이해 없이 횡설수설 잘못된 질문을 던짐
  2. IR 미팅 중에 졸거나 핸드폰을 수시로 보면서 집중하지 않음
  3. 스타트업 IR 단계에서 사업의 방향성이나 전략이 잘못되었다며 교조적으로 지적을 함. 그 방향은 아닌 것 같다, 잘못 하시고 있다고 단언하고 훈수를 둠
  4. 대표자의 학벌, 과거 경력 등을 까면서 모멸적 발언을 함
  5. 회사는 괜찮은 것 같은데 다른 투자자가 나타나면 같이 하겠다고 함 (눈치싸움, 총대 메기 싫어함)
  6. 투자할 것처럼 구두로 투자의사를 밝히고 투자하지 않음

1. IR 미팅에 사전 지식 없이 잘못된 질문을 남발

특히 1번의 경우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행태인데, 보통 IR 미팅이 잡히기 전에는 스타트업이 투자자를 위해 만든 회사 소개자료인 IR deck이 넘어갑니다. 면접 전에 이력서를 보고 면접이 잡히는 것처럼 IR자료를 보고 ‘IR 미팅 잡아보자’해서 IR을 잡게 됩니다.

그런데 IR자료를 안읽어보고 회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제로인 상태로 들어와서 방향에 어긋나는 질문을 하면 창업자는 맥이 빠집니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그 IR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연습하고 초조한 상태로 들어갔는데 회사에 대한 스터디가 전혀 안되어있고 이상한 질문을 하면, ‘아 이 사람 관심이 없으면서 그냥 불렀구나?’라는 마음과 함께 화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2. IR 미팅에서 졸거나 핸드폰 보면서 집중하지 않음

2번째의 경우도 같은 맥락입니다. 특히 VC에서 여러명의 임직원이 들어와서 IR을 진행하는 경우에 의사결정권자인 윗사람이 조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도 존중 받지 못하는 느낌 + 투자는 물건너 갔구나 하는 느낌을 받죠. 이건 어느 미팅에서나 해당되는 기본 에티켓이지만 일년에 한번 정도는 이런 피드백을 받습니다.

“대표님 오늘 IR 미팅 어떠셨어요?” 물어봤더니 “아 오늘 네 분 들어왔는데, 상무님이 조시더라구요. 그 분이 의사결정권자 같던데” 같은…

3. IR단계에서 사업모델에 대한 비판, 훈수 또는 지적을 함

위 1, 2번의 경우에는 기본 에티켓에 대한 문제이고 저런 VC는 기본이 안되어있다고 생각하지만, 3번은 소위 나름 이름 있는 VC에서도 종종 저지르는 행태라고 생각됩니다. 창업자들은 하루종일 사업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고 24시간 잘 때도 사업 생각을 한다고 할 정도인데 IR미팅에 들어와서 회사 소개 30분 듣고 ‘그 방향은 잘못된 거 같다, 이 BM으로는 안된다’ 등 전략적인 방향에 대한 훈수를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사업 경험 없는 VC들이. 이런 피드백은 본인이 창업자로서 엑시트까지 경험한 프라이머 권도균 대표나 펫프렌즈 김창원 같은 분들이 하면 그래도 창업자들이 배울 게 있고 듣고자 합니다. 유튜브 채널 ‘장사의신’에서 은현장 대표가 자영업자들에게 쓴소리하고 갈구고 하는 것을 듣고 배우려는 이유도 은현장이 후참잘 치킨브랜드를 200억에 매각한 실적이 있는 선배 자영업자니 배울 것이 있고 거기에 대한 리스펙트가 있기 때문에 듣는 것이죠.

그런데 금융 관련 커리어만 쌓은 사업 경험 없는, 특히 주니어가 ‘이건 아니다 저걸 해야지’라는 식의 피드백과 함께 과도한 비판과 훈수를 두면 창업자는 그 곳을 좋은 투자자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기에서는 투자 절대 안받는다’는 오기가 생기죠.

이번 포스팅 전에 친분있는 스타트업 대표 몇분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한 창업자는 IR미팅에서 회사 전략 방향에 계속 훈수를 두는 주니어 VC에게 발끈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본인 사업해보셨나. 그 말씀하신 방향대로 적용해서 한번 해보시라. 그게 되는지”라고 맞붙을 놓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투자를 집행한 후에는 VC가 이런 저런 전략적 고민을 같이 하고 조언도 하고 으샤으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투자도 하기 전, IR 미팅에서 ‘이래라, 저래라, 이건 아니다’하는 것은 소개팅 자리에 나와서 본인의 가치관과 안맞는 소리를 하는 상대방에게 ‘그건 아니죠, 이거죠’라며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전혀 아니고 대표가 사업을 잘못한다고 생각하면 그냥 IR미팅 후에 투자 안하면 되죠. 그걸 가지고 지적질하며 훈수 둘 필요가 없습니다.

VC들이 스타트업 투자 전문가라고 해서 사업 전문가인 것은 아닙니다. 본인들이 제시하는 사업 방향에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직접 사업을 하면 되겠죠.

‘야놀자’조차도 사업을 시작한지 10년이 되어 어느정도 서비스가 자리를 잡았을 때도 IR자리에서 VC들로부터 그렇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임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창업가가 한꺼번에 투자자 7명에게 비즈니스의 성장과 성공 가능성을 이해시키는 게 쉽지 않았다. 투자자의 반응도 시원찮았다. 창업가는 ‘모텔’로 대변되는 음지의 숙박문화를 양지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자들은 ‘숙박문화를 바꾸는 게 가능한가’, ‘왜 숙박문화를 바꿔야 하나’ 같은 지적을 했다.

– 포브스 기사, [우정과 열정(5)] 이수진 야놀자 대표 & 이범석 뮤렉스파트너스 대표 

4. 대표자의 학벌과 경력을 이유로 무시함

지금은 유니콘이 된 ‘야놀자’ 이수진 의장이나 ‘배민’ 김봉진 의장 모두 뛰어난 학벌이 아니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한 무시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VC업계 대표님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인데, 지금은 문화도 많이 좋아졌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는 지금의 문화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후진되어 있었고, 그러다보니 스타트업에 고자세로 대하는 VC도 많았다는 것이죠.

요즘도 공공연히 그런 행태가 보이는데 모 VC 대표님은 철학이 학벌, 경력 안좋은 스타트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분의 학벌이나 경력은 업계 탑으로 쳐주는데 야놀자나 배민의 케이스를 보면 학벌은 특히나 더 큰 의미가 없는 요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결핍이 사업을 성공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을 종종 보기 때문이죠.

5. 다른 VC가 투자하는지 확인하고 들어가려고 함

IR이 굉장히 잘 진행되고 투자자는 해당 스타트업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합니다. 투자를 집행하고 싶다, 잘 될 것 같다면서도 다른 투자자는 누가 들어오는지 물어봅니다. 그리고 아직 다른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면 다른 투자자가 나타날 때까지 투자의사결정을 무기한 보류하는 케이스입니다.

요즘처럼 시장이 얼어붙은 시기에 가장 많은 케이스이기도 하죠. 앵커투자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회사가 좋아보여도 투자를 하지 않고 앵커가 나타나면 그 때 우르르 다같이 투자하는 형국입니다. 벤처캐피탈의 정의 자체가 모험 자본인데 아무도 먼저 모험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죠. 요즘같은 시장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내부 투심을 통과하는데 있어서도 우리 혼자 들어간다고 하면 말빨이 먹히기 쉽지가 않은데, A사 B사가 같이 투자한다고 하면 내부 투심에서도 편안함을 줍니다. 음 다같이 투자하는데는 이유가 있겠지, 좋은 하우스가 투자하는데는 이유가 있겠지 같은 것이 아무래도 투심을 통과하는데 유리한 요소이기는 합니다.

6. 구두로 투자하겠다고 한 후 의사결정 번복

몇번의 IR이 잘 진행되고, 투자를 하겠다고 한 후 시간을 끌다 변심하는 케이스. 투자 확약서를 쓴 후에 실사를 하다가 뭔가가 발견되어 의사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그건 논외이구요. 구두로 이건 제가 책임지고 투자하겠다는 식으로 한 후 흐지부지 의사결정을 번복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처음에는 회사가 굉장히 좋아보였는데 이후 사무실에 돌아와 냉정해지고 회사를 안보게 되면 에너지 레벨이 떨어집니다. 거기다 주변에서 그 회사 별로인거 같은데? 라는 피드백을 들으면 자신감이 떨어지며 투자를 안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투자금이 들어올 것으로 기대하고 거기에 맞게 사업계획을 짜고 있는데 갑자기 드랍이 된다고 하면 한달 한달 현금 소진을 걱정하며 자금계획을 세우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좀 스타트업 입장에서 쓴 것임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기 바래요. 이번 포스팅을 위해 제 개인적 경험에 더해 몇몇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사전 인터뷰도 했는데, 그들이 이런 VC의 행태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만큼 별로인 스타트업들도 많아서 혹독한 VC들의 행태도 일견 이해가 된다”는 발언도 했습니다.

아무튼 저도 벤처투자를 하는 입장에서 5번처럼 다른 VC 투자자의 의사결정을 보고 따라 들어가려 한 경우, 그리고 의사결정을 번복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