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세일즈맨이 되는 것이 목표였던 나
지난 번 포스팅 ‘증권사 인턴, 열등감 투성이 언더독 인생을 바꾸다’에서 쓴 것처럼, 인턴에서 많은 모욕과 혼남을 당한 후 독서와 CFA 자격증 공부를 하며 증권사 입사를 꿈꿨습니다.
25살, 대학 졸업을 앞둔 제게 가장 큰 고민은 ‘어디서 일할 것인가’였습니다. 군대에서의 늦은 입대와 전역, 그리고 증권사에 대한 막연한 꿈. ‘월스트리트’와 ‘보일러 룸’처럼 화려해 보이는 주식 세일즈팀만이 전부였죠.

그리고 상병 말, 전역을 4개월 정도 앞둔 시점에 휴가를 나왔다 메릴린치 증권에서 일했던 사촌 매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매형은 사촌 누나와 함께 한국에 잠시 들러, 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매형이 던진 질문이 제 생각을 바꿔놓았습니다.
“넌 나중에 뭐 되고 싶어?”라는 매형의 질문에 “주식 세일즈맨이요,”라고 답하려는 순간, 매형은 다시 물었습니다. “아 아니다, 나중에 뭐 하고 싶어?” 그 순간 저는 할말이 없었습니다. ‘되고 싶다’는 생각과 ‘하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식 세일즈맨이 ‘되고 싶다’고만 생각했지, 주식을 ‘팔아야지’가 제 꿈은 아니었거든요. 그냥 증권사가면 돈 잘 벌거 같고 멋있어 보여서 주식 세일즈맨이 되고 싶었을 뿐.
매형을 통해 회계법인 FAS에 대해 알게 되다
저보다 2살 많은 매형은 국내 증권사, 그리고 메릴린치 증권을 거친 후, 콜롬비아대에서 석사를 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목사님을 하고 있습니다.
매형은 증권사에서 주식 세일즈도 해봤고 M&A 자문 업무도 해봤습니다. 특히 주식 세일즈로는 20대 후반에 보너스 포함 1.7억을 벌 정도로 연봉을 받아 봤지만, 돈도 그 만큼 많이 써서 딱히 남는 게 없었다며, ‘돈 많이 벌어 많이 쓰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 가서 일을 배우는 게 어떠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딜로이트 FAS 같은 데를 가. 거기 애들이 밸류에이션 모델링 같은 거 정말 잘하거든? 거기서 그런 거 배우면 나중에 할 게 더 많을거야”라고 이야기 해줬습니다. “빅 4 FAS를 가”도 아니고 딱 정확히 “딜로이트 FAS를 가”.

왜 하필 딜로이트였는지는 그 이후로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본인이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해본 곳이 딜로이트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줄곧 증권사만 생각 했기에 빅 4 회계법인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딜로이트 외에 PWC, EY, KPMG 등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구요. 회계법인은 회계사들이 감사하는 조직으로만 생각했지 FAS라는 조직이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딜로이트 FAS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다. 방법은 몰랐지만
딜로이트? FAS? 처음 들어봤지만 저는 “그렇군요, 저도 한번 고민해볼게요”라고 대답했고 그날부터 제 머리에는 ‘딜로이트 FAS’가 자리 잡았습니다.
휴가 나올 때마다, 그리고 전역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거의 매일같이 딜로이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FAS 부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여기 가려면 어떡해야 하지… 그런 생각만 했어요. 웃긴 게 회계법인 FAS가 목표가 아니라 정확히 딜로이트 FAS가 목표가 되었지요.
‘도대체가 이런 곳은 어떻게 해야 들어가는 거야?’라며 웹사이트는 매일 같이 들어갔지만 일단 눈앞에 닥친 학점 관리와 CFA 레벨 2 시험부터 합격해야 했기에 그저 공부만 열심히 했습니다.
군대에서 공부에 굶주렸었는지, 매일 아침 6시 도서관 – 수업 듣고 – 도서관 – 밤 11시 집에 와서 취침, 이 생활을 거의 매일 같이 반복하며 마지막 학기 학점을 4.0 만점에 CFA 2차 합격까지 하였고, 졸업과 동시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에서 사는 것이 너무 좋고 편해서 한국에서 일할 생각이었고, 딜로이트 FAS를 가고는 싶었지만 그 곳은 공개채용도 잘 안할 뿐더러, 신입 채용은 거의 안하는 곳이라 채용공고 자체가 뜨지를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창업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미국에서부터 친했던 GT라는 친구와 함께 ‘정글멘토’라는 커뮤니티 창업을 준비하면서도 금융권 채용에 계속 지원했습니다. 딜로이트 FAS는 채용공고가 안뜨니 어찌할 도리를 모른채.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다닐 때 친했던 선배형을 3년 만에 만나게 되어 저녁을 먹으며 캐치업을 했고 저는 그 형에게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정글멘토 회사소개서를 노트북으로 틀어 놓고 설명을 해줬습니다. 그 형은 회사소개가 별로였는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정말 거짓말처럼 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야 나 친한 형이 딜로이트 FAS에 있는데 얼마 전에 사람 뽑는다던데 관심있어?”

‘헉? 그 딜로이트 FAS?’ 저는 순간 얼떨떨했고, 그 자리에서 조금 고민하다 관심 있으니 알아봐달라고 했죠. 그 형은 제가 있는 그 자리에서 그 친하다는 형에게 전화를 걸어 저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하며, 한번 같이 점심 먹자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한 이틀 후, 여의도 IFC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뭘 먹었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고 저는 그저 ‘와… 딜로이트 FAS 다니는 사람 얼굴 좀 보자’라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딜로이트 FAS에 입사하게 되다
그 분의 이니셜은 YS로 ‘지금 채용이 거의 마무리 되었다. 4명을 뽑는데 3명은 이미 다 뽑았고, 한자리 남았고 면접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4명 중 3명은 모두 KPMG와 EY에서 넘어 온 옆그레이드식 경력직이라 한자리는 좀 fresh한 신입으로 뽑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딜로이트 FAS 자체가 신입 채용을 거의 하지 않고, 마지막 신입 채용이 3년 전이었다는 말과 함께 저에게 이력서를 보내면 자기가 내부 추천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를 추천해준 YS형은 그날 처음 만난 저에게 고맙게도 저와 몇 년 전부터 농구 모임을 같이 하고 있는 친한 동생이라고 하자며, 그래야 입사 확률이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천만 다행인 점은 YS형이 팀에서 굉장한 신임을 얻고 있는 일잘러였고, 저는 비교적 순탄하고 우호적인 면접 끝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다시 쓰면서 10년도 넘은 당시 일을 처음으로 이렇게 자세히 복기하게 되네요. 다시 생각해도 그저 행운이었고, 감사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됩니다.
망상활성계(RAS)의 비밀
이 글은 단지 FAS 입성기에 대해 쓰기 위한 포스팅이었는데 글을 쓰면서, 최근에 읽은 책 내용이 오버랩 되어 소개하려고 합니다.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이라는 책에는 성공철학으로 유명한 나폴레온 힐의 명언 ‘마음이 무엇을 품고 무엇을 믿든 몸이 그것을 현실로 이룬다.’는 말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우리 뇌에는 망상활성계 (RAS: Reticular Activating System)라는 영역이 있는데 RAS는 뇌의 게이트키퍼로 감각기관으로 입력되는 거의 모든 정보가 RAS를 거쳐서 뇌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는 모든 것이 RAS를 통과하며 뇌의 활성화 스위치며 동기부여 센터입니다.
이 RAS는 일종의 내장형 GPS가 있어 일단 목표와 목적이 수립되면 RAS가 그리고 연결된 것들을 알아서 선별합니다. 일단 RAS에 특정 아이디어나 목표를 설정해 놓으면, RAS는 내가 잠을 잘 때도 깨어 있을 때도 부단히 작동해서 명령한 것을 정확히 찾아낸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분명히 말합니다. 어떻게 이룰지는 생각하지 말고, 무엇을 원할지만 결정하라고. 그러면 RAS가 열심히 작동하여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일단은 무엇을 원할지 결정한다. 그러면 RAS가 그것을 ‘어떻게’ 이룰지 답을 찾을 것이고, 그러면 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 by 앨런 피즈 & 바바라 피즈
이 책의 저자인 부부도 각각 45세, 34세의 나이에 사기를 당해 무일푼이 되었지만, RAS에 원하는 것을 입력하고 실제로 그것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RAS에 집어 넣고 어떻게 이룰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죠. 그리고 그들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아래의 책을 포함해 연달아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내게 됩니다.

오늘 포스팅을 쓰다보니 새삼 제가 그 때 딜로이트 FAS라는 목표를 제 RAS에 집어 넣었고 그것만 상상하다 보니 진짜 그 길이 거짓말처럼 펼쳐진 경험에 대해 쓰게 되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입사 후 생존기에 대해 써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