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CJ프레시웨이와 CJ인베스트먼트, 스트롱벤처스, 퓨처플레이 등 초기 VC로부터 누적 투자 93억원을 유치한 ‘플레이팅’이 경영난으로 회생 절차를 밟는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회생 절차가 곧 폐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고 보고 감액 처리를 해야 합니다. 감액 처리(write-down)를 통해 투자한 기업의 가치를 투자금 보다 낮게 설정하는 것이죠.
플레이팅, 회생 절차 돌입으로 스타트업 업계에 충격

플레이팅은 2018년에 설립되어 ‘셰프의 찾아가는 구내식당’이라는 슬로건 아래 기업용 조식 및 점심 정기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 B2B 서비스 기업입니다.

플레이팅의 펀딩 이후 5개월 만에 회생 절차가 시사하는 바

규모가 작고 외부 투자금에 의존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회생 절차나 파산으로 가는 경우가 드문 경우는 아니지만, 이번 사태가 더욱 충격적인 부분은 플레이팅이 2023년 6월 말, 32억원을 투자 받았기 때문입니다. 32억원을 투자자로부터 투자 받은지 불과 5개월 만에 회사가 경영난에 빠져 회생 절차를 신청한 것인데, 이건 경영진의 변명할 수 없는 잘못입니다.
투자유치를 받기 위해서 회사는 투자자들에게 향후 청사진, 전략, 포텐에 대해 엄청 어필했을 겁니다. 그리고 30억은 스타트업 펀딩에서도 그렇게 작은 편은 아닙니다. 시리즈A로 30억원 정도를 유치한 기업은 런웨이(run-way)를 통상 1년 반 정도는 설정합니다. 런웨이는 자금이 다 소진될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데, 즉 통상적으로 런웨이가 1-1년 반인 스타트업은 30억을 1년~1년 반 동안 잘 사용해서 흑자 전환을 해서 자생을 하든, 아니면 매출을 많이 올려 더 높은 기업가치에 시리즈B 라운드로 후속 투자를 유치해야 하죠.
그런데 불과 5개월 만에 자금을 다 소진했다는 것은 런웨이를 잘못 계산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달에 한 2.5-3억원 정도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30억원 투자를 유치했는데 투자 유치 후 매달 5-6억원 정도 손실이 나니 32억원을 5개월 만에 다 소진한 것이지요. 예상한 월 버닝 대비 2배의 버닝이 난 것이고 이것은 경영상의 패착입니다. (*월 버닝: 월간 현금 소진액)
적자 기업에 대한 VC의 투자 회피 성향은 커질 것

스타트업 경영을 하다 보면 망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투자금을 받은지 불과 몇 달 만에 이렇게 회생절차를 밟는 행위나, 또 다시 투자유치를 하겠다며 IR을 하는 것은 그 스타트업에게도 독이 되고, 펀딩에 의존해야 하는 많은 스타트업들에게도 독이 됩니다. 이런 현상들은 직간접적으로 겪은 투자자들은 더 몸을 사리게 되고, 적자 기업에게는 투자 자체를 꺼리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적자 나는 스타트업에 쉬이 투자하려는 VC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들 흑자 또는 BEP에 근접한 스타트업에만 투자하고 싶어하고, 그마저도 매우 보수적인 멀티플을 적용해서 기업가치를 평가하니 요즘 펀딩 시장에서 스타트업은 을 중의 을입니다. 무조건 VC 탓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상당 부분 스타트업들이 자초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확 바뀐 스타트업 투자 기조
박근혜 정부 때부터 스타트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정책을 펼쳤고, 벤처투자시장에 돈이 몰리다 보니 많은 VC들이 생기고, 정부나 민간에서 받은 돈을 VC는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했습니다. 시장은 점점 더 과열 되어져 일 년에 두배 세배씩 기업가치가 뛰고, A사가 투자하고, B사가 2배 높은 밸류에 투자를 해주니 서로 서로 승승장구하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호황을 누리며, 매출의 5배, 6배, 아니 10배까지 밸류에이션을 쳐주기도 하고, 적자가 얼마가 나던지 탑라인(매출)만 올라가면 투자를 해주니 내실이나 이익을 내는 부분보다는 ‘투자로 적자 메우기’식의 펀딩 우선주의가 팽배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 사태를 맞아,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정부는 시중에 돈을 엄청나게 풀었고, 자동차, 그림, 주식, 코인 등 자산 가격은 모두 폭등하였습니다. 2020-2021년, 2년 간 스타트업의 기업가치 역시 폭등하여, 부르는 게 값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연매출 10억, 적자 10억인 회사라도 밸류는 100억, 200억 부르는 기업들이 넘쳐 났고, 또 그 밸류에 투자를 해주는 투자자들도 많았습니다. 좀 괜찮은 회사다 싶으면 서로 투자 룸을 확보하여 투자하겠다고 줄을 섰습니다.

2021년 말부터 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하자 이러한 기조는 바뀌고, VC부터 LP(쩐주)들로부터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고 그러다보니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역시 급격히 보수적으로 변했습니다.
문제는 그 사이에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회생 절차를 밟거나 파산하는 회사들이 하나 둘 생겨난 것입니다. 또 마지막 투자 라운드 대비 밸류를 50%씩 깎이는 곳도 나타나다 보니, 이제 벤처캐피탈들 역시 “돈 못 벌면 투자 안한다”는 식의 극단적으로 소극적인 투자 성향을 띄게 됩니다.
그 결과 요즘 벤처캐피탈은 모험자본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모험을 극도로 꺼리는 성향을 보입니다. 불과 2, 3년 전에는 스타트업이 실적이 저조해도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지금 우리 회사 매출은 작고, 적자지만… 투자해주시면! 매출도 늘리고! 이익도 늘리고! 시장점유율 높여서 상장도 하고! 어! 다했어!”하면서 투자를 쉽게 받곤 했는데 말이죠.
급변하는 투자 트렌드, 부익부 빈익빈

지금 벤처캐피탈 업계는 투자 기조만 적극적 -> 보수적으로 급변하는 것이 아니라, 트렌드도 급변하고 있습니다. 수년 전 인기가 있었던 트렌드는 커머스, 플랫폼, HMR(밀키트) 회사에 대한 투자였습니다. 마켓컬리부터 오늘회, 오늘의집부터 발란, 트렌비 같은 명품 커머스들의 몸 값이 수천억에서 수조원까지 평가를 받고 투자금이 엄청나게 몰렸습니다. 1인 가구 증가 추세와 함께 밀키트 시장이 커진다며 밀키트 회사에도 투자금이 몰렸구요.
그렇게 몇 백억씩 투자 유치한 커머스,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경쟁에서 이기고 매출 지표에만 집중하다 보니, 인건비와 마케팅비를 엄청나게 지출하면서 성장하는 전략에 치중했습니다.

그렇게 컬리, 오늘회, 발란 트렌비까지 대규모 영업손실과 현금 소진이 이슈가 되었고, 경영난에 밸류에이션까지 반토막 이상 나기에 이릅니다.
이제 VC들 사이에서는 적자 나는 커머스 기업, 밀키트 기업 등은 쳐다도 보지 않는 식의 기조가 팽배합니다. 한번 크게 데였다 보니 진절머리 나 하는 느낌입니다. 제 고객사 중에서도 가장 투자 유치 받는 게 힘든 사업이 커머스나 밀키트 사업 회사입니다. 특히 자사 PB 브랜드가 없거나 매출 비중이 극도로 낮은, 남의 제품 팔아주는 플랫폼은 더더욱 투자 받기가 힘드네요.
짙어지는 딥테크 선호 현상
그러면 거기에 몰렸던 돈이 요즘은 어디 몰리느냐하면 죄다 딥테크, 딥테크 하는 추세입니다.
최근 펀드를 결성하는 VC들의 펀드명도 ‘딥테크 펀드’, ‘초격차 펀드’라고 하여 반도체, AI, 로보틱스, 자율주행, 바이오 산업 등에 투자하는 펀드를 조성하고 관련 회사들에 대한 선호 현상이 짙다 보니, 스타트업 펀딩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펀딩을 못 받고 있는 기업들 중 경쟁력 있고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있음에도, 그들이 영위하는 사업의 섹터가 섹시하지 않아 투자 유치가 극도로 힘들고, 그러다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극도로 밸류를 낮추어 투자를 받거나, 아니면 극도의 구조조정을 통해 최소한의 지출만 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험자본이 모험을 안하는 것이 다 그들의 탓도 아니지만, 아쉬운 면이 있고 소위 말하는 한국인의 냄비 근성이 스타트업과 투자 업계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느낌입니다. 한 5년 전에는 콘텐츠, 유튜브 MCN, 미디어커머스, 라이브커머스 같은 회사들이 아주 핫했고, 그 이후에도 IT 플랫폼, 밀키트 제조사 및 브랜드가 핫하더니 이제는 그 테마는 완전히 한물 간 취급을 받으며 모두가 딥테크! AI! 하는 느낌입니다.
자생력이 요구되는 스타트업, 그리고 모험이 요구되는 벤처캐피탈
플레이팅 사례로 이제 좋으나 싫으나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펀딩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스타트업 업계도 자생력을 갖추는 수 밖에 없습니다. 섹터나 회사 비즈니스마다 차이는 존재하지만, 제 사견으로는 서비스나 제품 런칭 후 5년 안에는 흑자 전환을 해서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사업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중에는 사업을 개시한지 7, 8년 차가 지나가는데도 매년 적자를 내며 투자에만 의존하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좀 심한 경우에는 이 회사의 목표가 돈 벌기가 아니라 투자 받으며 회사의 기업가치를 키우기인가 싶은 회사도 있습니다. 30억씩 투자 받고 6개월 만에 투자가 더 필요하다는 식의 회사라면요.

한 VC 대표님이 최근 저녁 식사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 회사도 돈을 벌어야지. 참 당연한 이야기인데, 지난 몇 년 동안 그 개념이 완전히 사라졌었어.” 사업의 본질은 돈 버는 것이니까요. 이익을 내고 자생을 해야 합니다. 인당 매출액이 연간 2, 3천만원 밖에 안되는 회사들은 직원 수를 줄이고, 마케팅비를 줄여서라도 버텨야 합니다.
그리고 벤처캐피탈 역시 모험을 해야 합니다. 다만 컬리의 기업가치 급감, 발란, 트렌비의 수백억 적자, 투자유치 수개월 만에 회생절차 밟는 플레이팅 등 이런 이벤트 때문에 쉽고 빠르게 지금의 소극적인 기조가 바뀌지는 않겠지요. 스타트업이 또 잘해야, 벤처캐피탈도 모험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컬리처럼 앞서서 높은 밸류를 받은 기업이 다시 잘 살아나서 상장도 하고, 투자자들이 EXIT도 해야, 그 후속 밀키트 회사이든 커머스 회사이든 또 투자를 받고 성장할 수 있겠죠.

최근 VC들과의 점심 모임에서 느낀 바는 다들 컬리의 턴어라운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컬리가 잘 되어야, 내 투자 포트폴리오 회사도 투자를 받고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동안 많은 투자를 받아 성장해온 컬리, 발란 같은 회사들이 부디 좋은 선례로 남아, 투자 시장에 다시금 활력을 넣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