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Wall Street, 수포자의 인생을 바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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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

영화 ‘월스트리트’, 잉여 인간의 인생을 바꾸다

이 카테고리 명을 일상/기타에서 ‘인생 기록’이라고 좀 거창하게 바꿨는데, 가볍게 기록할 거리도 남기고, 또 이 블로그 첫 글처럼 수포자가 투자은행과 사모펀드까지 가는 길, 그리고 앞으로 갈 길 등에 대해 적을 마땅한 카테고리가 없어 새롭게 명명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20살, 제 인생을 바꾼 영화 ‘월스트리트 (Wall Street)’ 에 관해서 입니다.

월 스트리트
Wall Street (1987)

인트로: 졸지에 미국으로 유학가다

“너 아직도 미국 유학 가고 싶어?”

수능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저녁, 수능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화목한 분위기 속에 집에서 엄마 아빠와 저녁 식사를 하기 전 엄마가 물었습니다.

“응”하고 별 생각 없이 말했습니다. 고 1때 미국 유학 가고 싶다고, 보내 달라고 그렇게 몇 달을 애원했고, 유학원도 다녀왔지만, 우리 부모님은 오랜 기간 고민하다 “대학교 때 미국 보내줄게”로 결론을 내리고 저를 한국에 남기기로 했습니다. 고 1때 보수적인 우리 담임 선생님이 많이 반대했다는 정도 외에 다른 내막은 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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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곧 짐 싸서 갈 것 같던 미국 유학은 멀어졌고, 저도 미국 유학에 대한 생각은 마음 속에서 잊혀져 갔는데, 수능 시험 끝난 바로 그 날 엄마가 했던 질문에 저는 무심코 “응”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으로 조기 유학 가서 잘 하고 있는 사촌형 사촌누나를 보며 나도 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한국에서 특별한 꿈과 희망도 없었기에… 오히려 다른 옵션이 없었기에, 쉽게 대답한 “응”.

엄마: “그래 그러면 1월 20일에 미국으로 가야 한다. 엄마가 유학원 통해서 학교도 다 알아봐놨고, 비행기 표도 예약해뒀다.”

나: ‘헉…’

막연하게 가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당장 2달 뒤라니… 그리고 버지니아는 어디야? 그렇게 별다른 준비도 없이 미국으로 간 저는, 사실 가서도 원대한 꿈이나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바짝 얼어붙은 나

미국에 가서도 ‘어떤 공부를 해야겠다, 어떤 대학을 가야겠다, 어떤 전공을 해야겠다’도 없는 그야말로 지금 돌이켜보면 ‘잉여 인간’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때 책은 많이 읽어 국어, 언어영역은 딱히 별 공부를 안해도 반에서 1등, 전교 1등도 몇 번 할 정도로 강했고, 관심이 많았던 사회, 영어 등 문과 과목 성적은 좋았으나 수학, 과학 등 이과 영역에서 쥐약이었던 저는 고 1 이후로 매번 성적이 하락하여 패배주의에 쩔어 있었습니다. 그게 미국을 갔다고 해서 바뀔리가 없죠.

패배주의, 목표의식 부재. 목표가 없으니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 당연하죠. 그게 미국 가서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랭귀지 스쿨에 들어가서 영어 공부 좀 하는 것 외에는 내가 미국에서 대학을 들어간다는 게 사실 실감도 안나던 시절이었고, 한국이 그립고 향수가 도져 몇 달 안에 한국에 가야 할 것 같은 심정으로 매일 매일 살았습니다.

나가서 할 일도, 친구도 없던 당시 영어 실력을 쌓기 위해 저녁마다 집에서 했던 건 다름 아닌 DVD로 영화 보기였습니다.

“Wall Street”라는 DVD가 사촌 형 집에 있어, 그 영화를 혼자 집에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자막을 틀어 놓고.

월스트리트: Money Never Sle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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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라는 영화는 1987년작으로 2010년 후속작으로 나온 ‘Wall Street: Money Never Sleeps’와는 다릅니다. (후속작은 망작)

1987년에 나온 영화 ‘월스트리트’는 명작으로 평가 받을 뿐만 아니라, 이후 ‘보일러 룸’, ‘울프 오브 더 월스트리트’, ‘빅 쇼트’, ‘마진 콜’ 등 월가나 주식을 다룬 수 많은 금융 영화들에 모티브를 제공합니다. 조폭 영화 “친구”의 성공 이후에 수 많은 조폭 영화들이 ‘친구’를 벤치마킹해서 탄생한 것처럼요. 오랫동안 회자되는 명작 영화들이 수 많은 명대사를 남기는 것처럼, 이 영화도 많은 명대사가 나옵니다.

영화 내용은 초반부만 요약하겠습니다.

영화 월스트리트의 주인공인 “Bud Fox (버드 팍스)”는 증권사의 주식 브로커이고, 또 다른 주요 캐릭터인 “Gordon Gekko (고든 게코)”는 월스트리트의 악명 높은 큰 손으로 사모펀드 대표이자 “기업 사냥꾼 (Corporate Raider)”입니다.

주식 브로커는 주식을 파는 세일즈맨으로, 버드 팍스는 기관 고객들에게 주식을 파는 브로커입니다. 80년대는 주로 전화를 통해 세일즈 피치(sales pitch)를 하고, 고객사에서 주문을 진행하면 거래를 하게 되고 브로커는 그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수취합니다.

주식브로커 ‘버드팍스’ & 기업사냥꾼, 월가의 큰 손 ‘고든게코’

주식 브로커들은 고든 게코로부터 거래를 따게 되면, 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수수료도 많이 받을 수 있어 항상 게코에게 딜을 소개하고 중개하여 주문을 가져오려고 안달이 나있지만, 게코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죠. 매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딜들이 소개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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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야심가 주식 브로커 버드 팍스는 게코의 오피스에 매일 “콜드콜 (Cold call: 사전 약속 없이 전화를 걸어 영업하는 방식)”을 걸어 영업하지만, 번번이 성사되지 않다가 게코의 생일 날, 생일 선물을 들고 무작정 비서실에 찾아가는 버드 팍스. 평소 게코가 좋아하는 레어템인 쿠바산 시가를 전달하면서 미팅이 허락됩니다. 딱 5분 간.

버드 팍스 컴퓨터에 저장된 게코의 생일

마음을 다 잡으며 고든 게코의 방에 들어가는 버드 팍스.

“Well, life all comes down to a few moments. This is one of them”

버드 팍스는 게코에게 딜을 소개하며, 자신의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블루스타’라는 항공사 주식을 추천합니다. 진행 중인 소송 건에서 블루스타가 이기게 될 것이라는, 아버지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내부 정보를 전달하면서.

그렇게 내부 정보를 활용해 돈을 벌게 된 고든 게코는 버드 팍스에게 80년대에는 엄청난 큰 돈인 100만불의 돈을 맡기며 주식 거래를 해보라고 하며 잘 운용 해보라고 합니다.

버드 팍스에게 백만불을 맡기는 게코

하지만 며칠 후, 10%의 손실이 나버린 게코의 계좌…

게코와 버드 팍스는 게코가 다니는 프라이빗 클럽에서 운동 후 사우나를 하며 손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버드 팍스: “오늘 손실을 좀 봤습니다. 테나플라이 주식 거래로 10만불 정도를 잃었습니다.”

고든 게코: “자네 아버지가 테나플라이 회사 노동 조합장은 아닌가보지?”

버드 팍스: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시나요?”

자기가 아는 가장 가치 있는 상품은 정보라는 게코

그리고 그 이후 대화 장면입니다.

‘고든 게코’, 내 인생에 롤모델이 생긴 순간

출처: 유튜브 채널 MOVIECLIPS (https://www.youtube.com/watch?v=-TLCaDbBv_s)

고든 게코는 이 장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Give me guys that are poor, smart, and hungry. And no feelings.” (가난하고, 똑똑하고, 헝그리한 녀석들을 데려와. 그리고 감정이 없는)

“You win a few, you lose a few, but you keep on fighting.” (벌기도 하고, 잃기도 하지만, 계속 싸워 나가는거야.)

“And if you need a friend, get a dog.” (친구가 필요하면, 개나 키워)

“It’s trench warfare out there, pal.” (밖은 전쟁터야 임마)

친구가 필요하면, 개나 키워

한마디로, 당시 저의 처지와 성격은 극중 고든 게코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게코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에, 목표 지향적이고 돈과 결과 중심적인, 감정이 없는 캐릭터였고, 저는 연약한 심장을 부여잡고 낑낑대던 애송이였으니까요.

“If you need a friend, get a dog. It’s trench warfare out there, pal.” (“친구가 필요하면, 개나 키워, 밖은 전쟁터야 임마”) 이 장면은 당시 외롭고, 향수병에 힘들어하며 무엇을 할지 모르고 있는 나를 질타하는 말처럼 들려 마음이 요동쳤고, 몇 번이나 그 자리에서 돌려 보며, ‘그래 정신 차리자. 친구가 필요하면 개나 키우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순진하게도 이 캐릭터에 반해버린 저는 나도 게코같은 금융인이 되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이 때부터 이 ‘월스트리트’ 영화를 수십 번을 돌려 보며, 대학에 가면 finance를 전공하기로 생각합니다. 그 당시 아직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갑자기 밤새면서 공부를 한다던지 아주 극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목표가 없던 인생에 목표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금융을 주제로 한 모든 영화를 닥치는 대로 뒤져서 보기 시작했고, 경제 신문지도 사보고,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에 불씨를 지펴준 영화가 바로 이 영화 ‘월스트리트’입니다.

20대 중반, 또 다른 저의 멘토형에게서 도전을 받기 전까지 영화 월스트리트의 고든 게코는 그렇게 수 년간 제 롤모델이 되어 ‘내가 뭔가를 해야겠다, 움직여보자’하는 원동력을 주었습니다.

이 영화는 구하는 게 쉽지 않지만, ‘유튜브 무비’에서 풀 버전을 구매나 렌트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 포스팅을 하며 다시 보니, 한글 자막이 엉망인 장면이 많아 아쉬웠습니다.

다음 에피소드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