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펀드 (일단 가즈아)
블라인드 펀드(Blind Fund)는 펀드의 쩐주인 LP가 펀드운용사인 GP에게 말 그대로 blindly, (앞이 안보이는채, 맹목적으로) 자금을 대준 펀드입니다.
블라인드펀드의 LP는 “너가 앞으로 어떤 회사에 얼마를 투자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blindly 돈 한번 대줄게! 선조치 후보고해!”하고 시원하게 일단 돈부터 쏴준겁니다.
그러려면 운용사인 PE가 참 잘해왔다는 거겠죠? 일단 믿고 돈을 대줄때까지 신뢰를 쌓았으니까요. 블라인드에 돈을 쏘기 전에 LP는 당연히 해당 PE의 과거 펀드 성과 (수익률), 매니저(운용역)의 경력, 펀드의 전략 등을 꼼꼼히 평가하게 됩니다. 과거 몇개의 펀드에서 평균 수익율이 20%+@, 인력도 우수하고 평판이 잘 형성된 조직이라면 블라인드 펀드를 운용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집니다.
근데 처음부터 블라인드펀드를 조성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주 대형 PE에서 경력을 오래 쌓은 스타 매니저가 독립을 하자마자 블라인드를 만드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이 프로젝트 펀드로 시작을 해서 성과를 보인 후에야 조금씩 조금씩 믿음이 생기고 신뢰도 쌓고 하면서 블라인드 조성까지 되는 것이죠.
프로젝트 펀드 (돈 좀 쏴줘요)
프로젝트 펀드는 프로젝트별로 펀드를 조성하는 것으로 선보고 후조치입니다. 투자할 대상이 나타나면 어느정도의 조건을 협의한 후 LP에게 달려가 “나 여기 투자할건데 어때요? 돈 좀 쏴주세요!” 하는거죠.
투자할 대상을 찾아야하고, 조건도 협의해야하고, 그 다음은 LP를 잘 설득해야하며, 그 과정에서 조건 협상도 계속되기 때문에 블라인드펀드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립니다.
그래서 투자 대상을 놓고 블라인드펀드와 붙으면 절대적으로 불리한게 프로젝트펀드입니다. 블라인드펀드는 내부 투심을 통해 내부적으로 의사결정만 하면 투자집행을 할 수 있지만, 프로젝트펀드는 LP를 설득해야하고, LP는 또 LP대로 내부 투심이 있기 때문에 그 과정 또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 바닥에는 불변의 법칙이 있습니다.
“모든 회사는 빠른 투자유치를 원한다.”
언제까지 투자가 들어가야되냐, 라고 물어보세요. 90%의 회사는 이렇게 답합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급합니다.”
왜냐하면 보통 급할 때가 되어서야 투자유치에 나서거든요. 투자가 필요하기 1년 전부터 투자유치 도는 회사는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투자자들이 투자하고 싶어하는 인기있는 회사에 투자하려면 속도가 생명입니다. 빠른 투자의사결정과 납입. 그런데 프로젝트펀드가 블라인드펀드와 속도로 붙으면 백전 백패입니다.
그래서 프로젝트 펀드는 좋은 투자 물건을 발굴해서 물밑에서 조용히 작업해서 LP를 설득하고 투자를 진행합니다. 다만 빠르게 잘 진행이 되기 위해선 LP를 설득해야 하니 아무래도 조건도 좀 까다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투자시장이 침체된 시기에는 각종 까다로운 독소조항이 붙기 마련입니다. 그래야 LP 설득도 쉬워지니까요.
운용사와 운용역 입장에서의 장단점
운용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블라인드 펀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시장에서 다들 소총으로 싸우고 있을 때 대포 하나 들고 들어가는 겁니다. 운용역 입장에서도 블라인드 펀드가 있는 하우스에서 일하면 투자 집행 확률도 높으니 결국 투자 빈도수도 높습니다.
다만 주니어 입장에서는 프로젝트 펀드에 있으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도 합니다. 블라인드 펀드에서는 잘 하지 않는 까다로운 조건 설정을 끊임없이 LP와 왔다갔다하면서 조율하다 보니 요즘 시장에서 LP 눈에 맞는 조건은 이 정도이다가 대충 그림에 서고, 창의적으로 딜 구조를 짜는 연습이 됩니다.
그리고 LP와 자주 접촉하다보니 LP네트워크도 방대하게 커질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펀드가 좋은 점은 바로 성과보수를 수취하는 부분에서 더 빠르다는 점. PE 수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펀드 성과에 대한 성과보수인데요, 펀드의 만기가 끝나야 펀드 청산 후 성과 보수를 지급하게 되는데 프로젝트 펀드는 해당 회사의 EXIT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그 즉시 펀드가 청산되면서 성과보수도 수취하게 됩니다.
반면에 블라인드펀드는 펀드 설정 기간의 만기(주로 5-7년)가 되어야 하구요. 그마저도 한회사가 아니라 모든 투자대상에 대한 플러스 마이너스 정산이 이루어지고, 그에 대한 성과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게 됩니다. 그러니 투자 후에 펀드청산이 될때까지 진득히 이직도 하지않고 기다려야 성과보수를 받을 수 있고, 한 투자에서 잘 되었어도, 그 펀드에서 투자한 다른 투자 건이 잘 안됐으면 성과가 없거나 크지 않을 리스크가 있는 것이죠.
그런면에 있어서 저는 나중에 자기 펀드를 하고 싶은 운용역이라면 프로젝트 펀드 경험도 충분히 있는 것이 큰 장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년간 근무했던 외국계 PE는 국내 LP가 없었고, 블라인드 펀드가 있었기 때문에 LP를 만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마저도 LP에게 보고하는 팀은 따로 있었고 저희는 한국에서 투자만 하는 팀이라, LP는 1년에 한번 홍콩에서 열리는 Annual General Meeting에서 한번 만나 네트워킹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 LP 네트워크가 전혀 없다는 단점이 있더라구요. 오히려 중소형 PE에서 프로젝트 펀드만 해보면서 굴러본 친구들이 LP네트워크도 많고, 관계도 긴밀하며 딜 구조도 창의적으로 잘 짜고, 어떤 구조를 짜야 LP가 좋아한다는 소위 “와꾸”를 잘 그리더라구요.
이 바닥을 아직 잘 모르는 대학생이나 취준생들은 무조건 덮어놓고 “블라인드 펀드 없는 곳은 가면 안된다”는 식의 인식이 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