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의 저는 영화 ‘월스트리트 (Wall Street)’를 4, 5번 보고 나자 이제 다른 금융 영화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다음 타자가 된 영화 ‘보일러룸 (Boiler Room)’

보일러룸은 금융 업계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의심스러운 투자를 전화로 판매하는 아웃바운드 콜센터를 의미합니다. 20살 때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금융권과 증권사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게 됩니다. 조폭 영화를 보고 조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조폭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고등학생처럼요.

보일러룸 – 주식 브로커에 대한 영화
영화 ‘월스트리트’가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주식 세일즈와 기업사냥꾼의 세계를 배경으로 했다면, ‘보일러룸’은 일반 개미투자자들을 상대로 하는 에쿼티 세일즈맨들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다만 이 영화에 나오는 회사는 사기꾼 브로커리지 펌입니다.
전화로 ‘콜드콜’을 돌려 특정 주식을 개인에게 영업하고 거래를 유도한 후, 거래가 발생되면 거기서 수수료를 먹는 브로커죠.
‘월스트리트’가 명대사가 많다면, 이 영화는 ‘명장면’이 많은데 특히 영화 초반 벤 애플렉이 인턴을 뽑는 인터뷰 자리에서 인터뷰는 안하고 스피치 5분 딱 하고 들어가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이 영화는 여기서 청자를 휘어잡는데…. ‘월스트리트’로 뽕을 맞은 어린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이날부터 저의 꿈은 ‘주식 세일즈맨’이 됩니다.
벤 애플렉의 레전드 스피치
‘보일러룸’의 벤 애플렉이 일하는 이 미심쩍은 주식 브로커 펌의 이름은 ‘JT Marlin’ (lol JP모건 짝퉁). 이 영화에는 JT Marlin 소속 블로커들이 성과를 올리고 펍에서 주식 이야기를 하며 축배를 들고 있을 때, JP Morgan의 주식 세일즈맨들이 “너네 주식 브로커 찾고 있어? 아 너네도 브로커라구? 회사 이름이? JT Marlin? lol… 우린 그냥 아래 동네 조그만 회사에서 일해, 들어는 봤을래나 JP Morgan.” 하면서 시비 붙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빵 터진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금융 뽕을 맞은 어린 저처럼 여기 JT Marlin 브로커들이 한데 모여, ‘월스트리트’ 영화를 보며 고든 게코의 대사를 다 외우고 따라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알 수 있듯, 고든 게코는 실제로 금융을 공부하고 금융계로 진입하길 원하는 많은 금융 꿈나무들의 아이돌이었습니다.

증권사 인턴을 하며 현실과 나의 위치를 처절히 깨닫다
아무튼 영화는 시각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쉽게 자극을 주고 동기부여를 하기에는 좋지만, 이런 왜곡된 판타지를 심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짜 경험은 인턴십과 책으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22살에 한 국내 증권사의 ‘기관 증권 세일즈 부서’에서 인턴을 하며 증권사 초봉은 3억이 아니라는 것과, 또 금융권에 들어가기에는 내가 실력도 없고 준비도 너무 안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현실은 다르고, 또 나는 너무나도 부족하구나.

그리고 이 때 저를 대단하다며 (대가리 단단하다며) 조련하고 달구었던 이사님은 15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제가 은사처럼 생각하고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내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고, 저보다 훨씬 똑똑하고 잘났다며 그 이사님이 저를 조리돌림할 때마다 비교대상으로 쓰던 2살 어린 유펜 출신 동생은, 지금도 절친한 동생으로 자주 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번 ‘보일러룸’ 포스팅은 다음에 나올 증권사 인턴십 에피소드를 위한 빌드업이었습니다. 영화 ‘월스트리트’, ‘보일러룸’이 제 인생에 롤모델과 꿈을 심어줬다면, 증권사 인턴 경험은 저에게 현실을 깨닫게 했고, 진짜 인생을 각잡고 변화 시키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거든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