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되기에 늦은 때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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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

IB 종사자들이 부러웠던 나

2017년, 미국 여행 중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구입한 마그넷.

IB

당시 회계법인 딜본부에서 5년차로 M&A 자문을 한창하고 있을 때라, 이 마그넷을 집으면서 내가 아직 외국계 IB에 입사하기에도 늦지 않은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의 제 상황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저는 31살, 미국 50위권 대학 출신, 회계법인 딜본부 5년차. 이런 프로필은 외국계 투자은행 채용 공고가 뜰 때마다 넘쳐나는 흔한 지원자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골드만삭스에서 채용공고가 나가면 회계법인 FAS에서만 해도 수백 개의 지원서가 쏟아지고 대부분은 버려집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회계법인 FAS 종사자들처럼 저 역시 대형 투자은행으로의 입성을 꿈꿨습니다. 비슷한 업무를 하지만, 훨씬 더 큰 규모의 딜, 더 높은 네임밸류, 그리고 2-3배에 달하는 연봉 차이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죠. 업무 강도는 엄청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지션이 오픈되면 수많은 지원자들이 몰렸습니다.

Bulge Bracket IB

외국계 Bulge Bracket IB는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씨티,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치뱅크, UBS, 바클레이즈까지 9개 회사를 지칭합니다. 크레디트스위스가 UBS로 넘어가면서 이제 8개 회사만 남았고, 특히 국내에는 바클레이즈가 철수함에 따라 7개 회사만 남았죠. 이들은 평균 15명씩, 총 105명 정도의 소수 엘리트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라자드, BDA, 제프리스 같은 부티크 M&A 하우스들의 위상도 높지만, bulge bracket 뱅커들은 입성부터 대우까지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0대 초반에는 저도 IB에 입성하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사실 ‘꿈꿨다’기보다는 ‘부러워했다’가 더 맞는 표현 같습니다. 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꿈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요.

FAS에서 M&A 자문을 하다보면 일년에 한두 번은 외사 IB와 카운터파티로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각자문을 하는 외사 IB를 인수자문을 하는 바이어 측 자문사로 만나는 것이죠. 큰 매각자문딜은 대부분 외사 IB가 차지했습니다.

FAS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M&A딜에서 외사 IB를 마주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저 평범하게 살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딜에서 카운터파티로 만나게 되면 첫 미팅에서 당연히 명함을 주고받게 되는데, 그 명함을 받고 나서 집에 와서 다시 꺼내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딜 이후에 미국 여행을 가서 마그넷을 사면서 ‘내가 IB에 가는 것도 늦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그넷을 구입한 2017년에서 정확히 3년 후, 34살의 나이에 메릴린치 IB에 입성했습니다. 메릴린치뿐만 아니라 크레디트스위스, Citi까지 최종 면접을 통과했고, 직급 면에서 가장 잘 쳐준 메릴린치로 결정했습니다. 7번의 면접 끝에 합격 후 오퍼레터를 받고 나서는 엄청난 기쁨보다는 ‘이게 맞나, 가지 말고 홍콩 PE로 갈까’ 등의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IB에 도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원하는 것을 꿈꾸고, 그려라, 할 수 있다고 믿어라. 그러면 이루어진다.’ 이 말이 정말 맞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딜로이트 FAS에 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일년 간 딜로이트 웹사이트를 들락날락하다 보니, 일년 후 진짜 딜로이트 FAS로 입사했고, 외사 IB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니 또 그곳에 갔죠. 30대 중반에는 벤처투자자가 되겠다고 했던 10년 전 블로그 포스팅과 소름 끼치도록 똑같은 35살에 벤처투자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절대 남들이 하는 부정적인 피드백 ‘너무 늦었다. 현실적으로 힘들다.’ 같은 소리에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완전히 무시하세요. 자신의 현실적인 조건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목표를 일단 잡으세요. 저는 이 주제로 포스팅을 100개 해도 모자랄 정도로 할 말이 많습니다.

29살에 딜로이트 밸류에이션 팀에서 나와 KPMG 크로스보더 M&A 자문팀으로 이직할 때, 딜로이트 당시 부대표님이 저에게 이직 사유를 물었습니다. “대체 왜 KPMG냐”고요. 저는 크로스보더 M&A팀에서 해외 딜을 많이 해보고 궁극적으로 외사 IB에 가보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부대표님은 “이미 늦었어, 절대 안 돼. 너 같은 애들은 널렸어. 그곳은 서울대에서도 특출난 애들이나 아이비리그 출신 완전 미국애 같은 애들을 뽑지”라고 확언했습니다.

제 와이프도 해외 대학에서 회계를 전공하고 25살에 AICPA를 준비하며 빅4 회계법인에 가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한 회계법인 종사자에게서 “이미 늦었다. AICPA 준비해서 지원해도 그때 넌 27살인데, 너 동갑내기들은 벌써 2-3년차라 경쟁력이 없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접고 말았죠.

와이프는 이제 그때가 얼마나 어린 나이였는지, 왜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며 포기했는지 후회합니다. 남들보다 2-3년 늦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닙니다.

메릴린치의 최연소 한국 대표도 35살에 메릴린치에 입사해, 선배들을 앞지르고 40대 초반에 대표가 되었습니다.

학벌이나 나이, 남의 부정적인 피드백에 휘둘리지 마세요. 저 역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그리고 메릴린치 등 외사 IB 세 곳에서 합격했고, 할교 많이 보기로 유명한 MBB 중 하나인 BCG 면접도 2차까지 갔습니다.

당시에는 너무나 자신감이 없어서, 지례 겁부터 먹고 면접에 들어갔습니다. 골드만삭스 때나 모건스탠리 때도, ‘어차피 나는 떨어질거 같은데… 왜 부르지 나 같은 사람을…’이라는 주눅 든 마음으로 들어가니 당연히 떨어졌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바쁜 사람들이 저 떨어트리려고 불렀을리가 없잖아요? 매일 새벽까지 일하는 그 바쁜 사람들이 시간 쪼개서 30분, 1시간씩 면접을 보는게 절 골탕 먹이려는 것도 아니고, 볼만 하니 불렀을텐데 제 마음에 한계를 그어놓고 인터뷰를 들어갔습니다.

​이후에 마인드를 고쳐먹고 열심히 준비한 결과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내가 마음먹고 작정하여 외국계 IB나 PE로 다시 가겠다고 하면 3년 안에 이루어낼 자신이 있습니다

. 시간은 좀 걸릴지언정 내가 찍은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20대 때는 막연한 희망이었지만, 지난 10여년간 그렇게 된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제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5년 후 나의 모습, 10년 후 나의 모습에 대해 긍정적으로 꿈꾸고 상상합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도 주변 사람들이 ‘늦었다, 안된다, 현실적으로 어렵다’같은, 자기들이 못하니 남도 못할 거라고 하는 그런 한계를 심어주고 있을텐데, 절대 그 말에 좌절하지 말고 원하는 바를 크게 상상하고, 목표도 크게 잡고, 정진해보세요.

분명히 그 꿈을 이룬 본인을 보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